허성배 주필
독재는 별다른 전조현상 없이 극적으로 한 순간에 무너진다. 체제 특성 때문이다. 억압·감시·통제 체제하에서는 정확한 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 내부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어도 독재자, 엘리트, 시민 모두 그 징후를 느끼지 못한다. 정권 엘리트는 거짓 충성 경쟁에 바쁘고 시민들은 공포정치 아래서 폭발 직전의 불만을 숨길 수밖에 없다. 체제 유지를 위한 억압 기제 때문에 체제 몰락의 예고를 눈치챌 수 없다는 것이 독재의 아이러니다.
독재자와 측근 엘리트가 겉으로 보이는 안정과 실제 취약함을 구분하지 못할 때 정권은 무너진다. 폭압정치, 부패, 빈곤은 독재정권의 약점이지만 몰락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독재정권이 매우 우발적 사건으로 여론 장악력을 잃는 순간 위기는 시작된다. 자신의 취약한 지지 기반을 미처 몰랐던 독재자는 시민의 불 같은 분노에 당황한 정부는 개혁을(말로만 검찰개혁 할것처럼) 약속한다.
지난달 말 튀니지에서 민주화 이후 두 번째 대선이 치러졌다.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여느 신흥 민주주의 경우처럼 튀니지 유권자는 기성 정치인의 무능을 심판했다. 이달 중순 무소속 헌법학자와 언론사 최고경영자(CEO) 출신 후보자의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예상 밖의 선거 결과와 함께 8년 전 혁명에 쫓겨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독재자 벤 알리가 암 투병 중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0년 12월 튀니지의 작은 도시에서 청과 노점상을 하던 청년 부아지지가 부패한 공무원의 단속 횡포에 항의해 분신했다. 이후 전국으로 번진 반독재 시위가 주변 국가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아랍 민주화 혁명의 시작이었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 시리아의 정권이 붕괴 직전에 몰렸고 시리아를 제외한 네 나라의 독재자가 물러났다. 장기 절대권력이 평화 시위대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졌다. 올해에도 알제리와 수단의 독재자가 시민의 거센 저항에 밀려 퇴진했다. 아랍 독재정권의 급작스러운 몰락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랍의 봄 혁명 초기에도 장기 독재자들은 공포정치의 여론 왜곡 때문에 대국민 사과와 유화책을 자신 있게 발표했다. 이는 측근 엘리트의 결속을 바로 깨뜨리고 성난 민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독재를 극적으로 무너뜨린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런데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난 여러 국가들 가운데 튀니지만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했다.
나머지는 독재로 회귀했거나 내전을 치르는 중이다.
민주화의 장애물은 어디든 비슷하지만 독재 몰락 이후의 결과는 각 나라가 기존에 갖고 있던 고유한 문제에 따라 달라진다. 아랍의 사례를 보면 혁명 발발과 혁명 이후 민주주의 안착 사이에는 별 연관성마저 없어 보인다. 혁명은 독재자가 한순간 장악력을 놓칠 때 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안정적 민주주의는 결코 우연히 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독선정치가 왜 무너지는지의 그 진리를 마음 속 깊이 깨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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