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 정치가 왜 쉽게 무너지는지 그 진리를 깨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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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 정치가 왜 쉽게 무너지는지 그 진리를 깨달아야
  • 허성배
  • 승인 2019.10.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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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독재는 별다른 전조현상 없이 극적으로 한 순간에 무너진다. 체제 특성 때문이다. 억압·감시·통제 체제하에서는 정확한 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 내부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어도 독재자, 엘리트, 시민 모두 그 징후를 느끼지 못한다. 정권 엘리트는 거짓 충성 경쟁에 바쁘고 시민들은 공포정치 아래서 폭발 직전의 불만을 숨길 수밖에 없다. 체제 유지를 위한 억압 기제 때문에 체제 몰락의 예고를 눈치챌 수 없다는 것이 독재의 아이러니다.
독재자와 측근 엘리트가 겉으로 보이는 안정과 실제 취약함을 구분하지 못할 때 정권은 무너진다. 폭압정치, 부패, 빈곤은 독재정권의 약점이지만 몰락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독재정권이 매우 우발적 사건으로 여론 장악력을 잃는 순간 위기는 시작된다. 자신의 취약한 지지 기반을 미처 몰랐던 독재자는 시민의 불 같은 분노에 당황한 정부는 개혁을(말로만 검찰개혁 할것처럼) 약속한다.

냉혹한 독재자의 단호한 정권 수호 의지를 기대했던 엘리트는 이에 딴마음을 먹기 시작한다. 숙청이 난무한 가운데 눈치 보기로 유지되어온 엘리트의 과잉 충성은 쉽게 변한다. 엘리트 몇 명이 정권의 생존을 불안해하자마자 독재자에 대한 변심이 전체로 퍼지고 빠른 이탈이 이어진다. 결국 군의 중립 선언이 뒤따른다.
지난달 말 튀니지에서 민주화 이후 두 번째 대선이 치러졌다.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여느 신흥 민주주의 경우처럼 튀니지 유권자는 기성 정치인의 무능을 심판했다. 이달 중순 무소속 헌법학자와 언론사 최고경영자(CEO) 출신 후보자의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예상 밖의 선거 결과와 함께 8년 전 혁명에 쫓겨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독재자 벤 알리가 암 투병 중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0년 12월 튀니지의 작은 도시에서 청과 노점상을 하던 청년 부아지지가 부패한 공무원의 단속 횡포에 항의해 분신했다. 이후 전국으로 번진 반독재 시위가 주변 국가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아랍 민주화 혁명의 시작이었다.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 시리아의 정권이 붕괴 직전에 몰렸고 시리아를 제외한 네 나라의 독재자가 물러났다. 장기 절대권력이 평화 시위대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졌다. 올해에도 알제리와 수단의 독재자가 시민의 거센 저항에 밀려 퇴진했다. 아랍 독재정권의 급작스러운 몰락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독재자가 시위에 대한 강력한 철퇴 대신 유화책을 발표하자 시민들은 더욱 과감히 퇴진을 요구한다. 폭압이 잠시나마 약해질 때 혁명 성공에 대한 기대가 가파르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빠르게 높아진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게 마련이고 시위대는 더욱 분노한다. 현실과 기대수준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시민들은 상실감을 느끼고 더욱 거세게 저항을 조직한다. 동시에 일반 시민이 시위 참여를 두려워할 때 용감한 소수가 시위를 선도하고 주위의 참여를 독려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점점 커져간다.
아랍의 봄 혁명 초기에도 장기 독재자들은 공포정치의 여론 왜곡 때문에 대국민 사과와 유화책을 자신 있게 발표했다. 이는 측근 엘리트의 결속을 바로 깨뜨리고 성난 민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독재를 극적으로 무너뜨린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런데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난 여러 국가들 가운데 튀니지만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했다.
나머지는 독재로 회귀했거나 내전을 치르는 중이다.
민주화의 장애물은 어디든 비슷하지만 독재 몰락 이후의 결과는 각 나라가 기존에 갖고 있던 고유한 문제에 따라 달라진다. 아랍의 사례를 보면 혁명 발발과 혁명 이후 민주주의 안착 사이에는 별 연관성마저 없어 보인다. 혁명은 독재자가 한순간 장악력을 놓칠 때 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안정적 민주주의는 결코 우연히 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독선정치가 왜 무너지는지의 그 진리를 마음 속 깊이 깨달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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