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6개월 연속 경기 부진 긴 겨울의 위기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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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6개월 연속 경기 부진 긴 겨울의 위기가 오고 있다
  • 허성배
  • 승인 2019.09.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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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20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그린북(최근 경제 동향) 9월호를 통해 “우리 경제는 생산이 소폭 늘었으나 수출·투자 부진이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6개월 연속 경기 부진 진단을 내린 것은 2005년 3월 그린 북을 내기 시작한 뒤 처음이다. 경제가 본격적으로 침체의 길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경제지표를 들여다보면 ‘날개 없는 추락’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8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6%나 줄었다. 벌써 9개월째 감소세다. 중동·중국 등을 대상으로 하는 반도체·컴퓨터 수출이 각각 30.7%, 31.6%나 줄어든 것이 큰 이유다. 7월 소매 판매는 국산 승용차 내수부진 등으로 전월보다 0.9% 하락했고 건설투자도 2.3% 감소했다. 수출·투자·소비 어느 것 하나 좋아진 것이 없다. 현재와 미래의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동행·선행지수도 각각 전월 대비 0.1%포인트, 0.3%포인트 떨어져 이를 뒷받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19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0.3%포인트 낮췄다. 지난해 11월 2.8%로 전망한 후 10개월 만에 세 차례에 걸쳐 0.7%포인트나 내린 것이다. 경제가 급속히 나빠지는 것은 세계 경제 수축의 회오리에 휘말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경기 하강기에 오히려 이를 부채질하는 무리한 경제정책을 쓴 탓도 크다. 통계청은 20일 “경기 정점이 2017년 9월이었고 이후 24개월째 하강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는 정부 출범 직후로 경기 하강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경기 확장기에나 쓸 만한 정책들을 한꺼번에 쏟아낸 셈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 52시간제 강행, 법인세·소득세 인상 등을 몰아붙였다. 물론 어느 정부도 경기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고 정책을 펴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행은 2017년 11월 기준금리를 인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라도 정책 잘못을 반성하고 꺼져가는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외골수 친노동정책 드라이브를 그만 멈추고 친기업 정책으로 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최저임금제 차등 적용과 주휴수당 문제를 해결하고 내년으로 예정된 중소기업 주 52시간 도입도 늦추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서 스타크 가문은 늘 `겨울이 오고 있다`며 경계했다. 한국 경제에도 긴 겨울이 오고 있는지 모른다. 끝을 가늠할 수 없어서 더욱더 무서운 겨울이다.
이미 슬쩍 모습을 내비친 디플레이션은 백 귀처럼 두려운 존재다. 디플레이션은 왜 무서운가. 물가가 지속해서 떨어지면 사람들은 소비를 미룬다. 실질이자(명목이자-인플레이션)가 높아질수록 오늘 소비하기보다 내일을 위해 저축하려는 이들이 늘어난다. 기업은 투자를 꺼린다. 쥐꼬리만 한 (명목)이자에도 빚을 주려는 이는 넘치지만 빚을 얻으려는 이는 찾기 힘들다. 남아도는 돈은 생산에 쓰이지 못하고 소득을 안겨주지도 못한다. 예상보다 낮은 인플레이션은 빚의 실질적인 무게를 늘린다. 과중한 빚과 디플레이션이 겹치면 죽음의 칵테일이 된다. 레버리지 효과를 노리고 한껏 빚을 늘렸던 이들이 더 버티지 못하면 자산시장도 무너진다. 소득은 줄고 자산 가격은 내려가고 실질 부채는 무거워지는 상황이 바로 1930년대 어빙 피셔가 말한 `부채 디플레이션`이다.
이런 때는 통화정책도 함정에 빠진다. 인플레이션이 3%일 때는 제로금리로 실질이자를 -3%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사라지면 실질이자를 낮춰 소비와 투자를 유인할 수 없다. 노동시장은 더 경직된다. 명목임금을 깎기 어려운 기업은 고용을 줄인다. 디플레이션은 통화전쟁을 부른다. 너도나도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며 이웃 나라 벗(beggar-thy-neighbor)의 혈안이 된다. 물론 아직 한국 경제가 이런 함정에 빠진 건 아니다. 지금은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는 디스인플레이션 단계다. 생산성 향상과 에너지 가격 하락 같은 공급 부문의 `착한 디플레이션` 요인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하쿠나마타타(근심 걱정 떨쳐 버려)`란 주문을 되뇔 때가 아니다. 부채 디플레이션은 판타지 속 백 귀로만 치부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의 작년 말 금융자산은 모두 1경 5,919조 원이다. 금융부채는 1경 5,457조 원이다. `누군가의 부채는 다른 누군가의 자산이므로, 빚을 진 쪽의 손실은 빚을 준 쪽의 이득이므로 디플레이션이 와도 경제 전체로는 제로섬`이라는 건 틀린 생각이다. 자산 거품이 꺼지면 양쪽 빚쟁이가 한꺼번에 망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을 견딜 수 있는 기초체력은 어떤가. 금리 인하라는 스테로이드제를 너무 오래 맞아서 경제의 뼈대는 약해졌다. 2000년대 초만 해도 5%를 웃돌았던 잠재성장률은 2% 중반으로 반 토막 났다. 우리는 환란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 혹독하지만 짧은 겨울을 겪었다. 당시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날개를 단 수출이 V자 반등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제의 거인들 모두 제 코가 석 자다. 그만큼 통화 잘하는 용인되기 어렵다. 정부의 해법은 제정 살포뿐이다. 민간이 소비도, 투자도 하지 않고 저축만 늘리면 부족한 수요를 정부가 메울 수밖에 없다. 민간이 돈을 빌리지 않으면 정부라도 빌려 써야 한다. 물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안 된다.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미래세대를 키울 연구개발과 교육 혁명, 혁신적 기반시설에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에 맞서는 데는 이것만으로는 어림없다.
한국 경제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뜨거운 여름과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골디락스의 가을만 있었다. 디플레이션이라는 백 귀가 덮쳐올 긴 겨울은 한 번도 없었다. 대통령도 경제사령탑도 `겨울이 오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움츠리고만 있다. 이게 추운 겨울위기가 아니면 무엇이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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