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 공화국 국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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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 공화국 국민은 없었다
  • 서윤배 기자
  • 승인 2014.04.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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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 수가.... 전기도 끊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기진하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서서히 스러져 가는 그 참상은……. 칠흑의 어둠 속에서 얼마나 한줄기 빛을 갈구했겠는가? 더 이상 생각조차 하기 싫다. 한 두 명도 아니고……내가, 자신이 그 상황에 있었더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눈을 돌리고 생각을 멈추고 싶은 마음뿐이다. 300여 명의 사람들 중 어찌 단 한사람도 구하지 못 한단 말인가? 과연 이런 국가를 누가 믿을 수 있는가?
침몰하는 배 속에 수백명의 꽃다운 청춘을 버려두고 나만 살겠다고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사고 수습, 일부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23일 여객선 '세월호' 참사 8일째를 맞으면서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속살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고 발생부터 사후 대처까지 어느 곳에서도 '국민'은 찾아볼 수 없는 '비정상 공화국'이었다. 이번 참사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될 최악의 비극이지만 수사와 구조가 진행될수록 '예고된 참극'으로 귀결되고 있다. 20년된 노후 선박을 무리하게 개조한데서 비롯된 선체 결함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세월호는 2년 전 증축되면서 정원이 804명에서 921명으로, 무게는 6천586t에서 6천825t으로 239t이나 늘었다. 무리한 증축은 평형수 부족을 낳고 이는 결국 위기 상황에서 배의 복원력 상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보름 전 기록된 '수리 일지'에도 '조타기에 문제가 있지만 근본 원인을 해결하진 못했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 사고 당일 배가 방향을 트는 변침점에서 조타기는 정상 작동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탈출 과정에서 손쉽게 펴져야 할 구명정은 44개 중 단 2개만 정상 작동했다. 직원과 승객에 대한 안전 교육도 엉망이었다.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10일마다 소화훈련과 인명 구조, 퇴선 훈련을, 3개월마다 비상 조타 훈련을, 6개월마다 충돌, 좌초, 추진기관 고장에 대비한 훈련을 받도록 돼 있지만 말뿐이었다. 승객들도 안전교육 받지 않았지만 감시의 눈은 어디에도 없었다.선원들의 윤리의식도 바닥을 쳤다. '승객 대피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지침을 어기고 '나 먼저 탈출'에 급급했고 탈출을 모의한 정황까지 나오고 있다. 배가 급격히 기우는 상황에서도 "선실이 안전하다.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고 한 7차례의 선내 방송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사고 발생 후 시종일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정부의 사후 대책 또한 엉망이었다.사고 초기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고 잘못된 정보를 발표하는가 하면 탑승객 수가 10차례 가까이 바뀌고 시신도 뒤바뀌는 등 재난관리시스템에 총체적 허점을 드러냈다. 해상교통관제센터와 해경의 허술한 초기 대응, 해상 크레인 등 중요 구조장비가 늑장 도착한 점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다. 정부 관계자의 부적절한 처신은 가족과 온 국민의 분통을 터트리게 하고 있다.'기념사진' 논란을 일으킨 안전행정부 국장, 유가족에게 '장관님의 행차'를 알리려 한 교육부 직원, '미개한 국민' 운운한 정몽준 의원의 아들 등도 국민을 분노를 넘어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보수논객 지만원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시체장사'에 비유한 발언,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의 유가족들을 비하하는 종북세력 논란, 같은당 권은희 의원의 "밀양송전탑 반대 시위에 참석한 여성이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고 있다"는 뜬소문을 사실 확인 없이 퍼뜨리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고 해역의 조류가 가장 느리고 수위가 낮은 23일도 민·관·군 수색작업은 계속되고 있다.식당과 휴게실 등이 있는 선체 3∼4층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수색이 진행되면서 사망자가 잇달아 발견됐다.이날 오후 3시 현재 사망자는 150명으로 늘었다. 아직도 최소 152명은 생사를 알 수 없다. 구조된 인원은 수일째 '174'에 멈춰서 있다. 꽃다운 여고생도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도, 결혼을 약속한 예비부부, 10살 초등생도 차디 찬 바다에서 불귀의 객이 됐다.이를 접하고 있는 국민들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던 책임자들의 행태가 하나 둘씩 드러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가슴을 움켜지고 있다. 초기 대응만 제대로 했었더라도 이렇게 큰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라며 너무 가슴 아파하고 있다.
진도 팽목항에는 지금도 분통과 절망의 통곡을 넘어 넋마저 잃은 듯 고요하다고 한다.

/정경부장 서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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