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 올해도 왔다

5천30만4,600원 담긴 종이상자 놓고 가…13년째 남몰래 선행

2012-12-27     한종수 기자

 

전주시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27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53분께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 내용은 “(주민센터 뒤편)얼굴 없는 천사의 비 옆을 봐주세요.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써주세요…”라는 두 마디 뿐.

‘얼굴 없는 천사의 비’는 얼굴 없는 천사의 숨은 뜻을 기리고 아름다운 기부문화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 2009년 12월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시민의 마음을 모아 세운 기념비다.

우연히 전화를 받은 강재원 행정민원담당(49)은 “목소리가 가느다랗고 긴장감도 섞여 있어 60대쯤으로 느껴졌다”면서 “짧은 말만 남기고 미처 감사의 뜻을 표현하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강 담당은 곧바로 “드디어 천사가 왔네요”라고 말하며 옆 직원과 현장으로 뛰어다가보니 ‘천사의비’ 뒤편 화단에 녹색 A4용지 박스가 놓여 있어 가져와 열어보니 5만원권 다발들과 동전이 가득 찬 황금색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었다.

모두 5,030만4,600원.

천사의 뜻을 담은 편지나 쪽지는 올해는 없었다.

이로써 천사가 13년 동안 14차례에 걸쳐 몰래 보내 준 성금은 총 2억9,775만720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전주시는 이 성금을 예년과 같이 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의 홀로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기로 했다.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는 지난 2000년 4월 초등학생을 통해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장을 중노2동주민센터에 보낸 뒤 사라져 불리게 된 이름으로 해마다 깜짝 등장한 지 올해로 13년째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이의 선행이 해마다 세밑이면 되풀이되면서 만인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해왔고 올해도 전화 한 통으로 돈이 놓인 장소만 알려주고 사라졌다.

한편, 노송동 일대 주민들은 매년 지속되는 천사의 뜻을 널리 기리고 그의 선행을 본받자는 의미에서 숫자 천사(1004)를 본 딴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 지역의 홀로 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을 돕는 다채로운 나눔과 봉사의 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한종수 기자 hansowon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