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짜리 동전 소중히 여길 때
허성배 주필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인다” 라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우리의 씀씀이가 헤프고 서는 부(富)를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화폐 단위는 1원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장부상의 기록상이나 나타날 뿐. 실제 통용되고 있는 최저 단위는 10원짜리 동전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노란색 동전은 어린아이들조차 허리를 굽혀 주우려 하지 않게 된 것이 현실이다. 5천만 우리 모든 국민이 이렇게 천대받는 10원짜리 동전을 하루 한 잎씩 저축한다면 이는 5천만 원이라는 돈이 된다. 1백 원씩이면 50억 원, 5백 원짜리 동전이라면 자그마치 2백 5십억 원이라는 큰돈이 되다,
이 정도면 부도 위기에 몰린 웬만한 중소기업의 숨통을 풀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국민이 빠짐없이 매일 1백 원씩. 한 달에 3천 원씩을 계속 저축한다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우리 이웃을 구할 수 있음은 물론 자금 공급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구태의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생각해 본다. 60년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국민은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의 일부마저 유보한 채 보릿고개를 극복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 흘린 결과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배고픔이 사라지고 한숨 돌릴만한 게 돈 지금. 우리의 씀씀이는 과연 어떠한가?
해외 관광을 떠나는 국민의 숫자는 마치 봇물이 터진 듯하고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의 수는 줄어들고 있어 관광적자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거기에다 더욱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내용인즉 어떤 나라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더는 곰의 쓸개나 발바닥을 사들인다면 한국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해외 도박판에서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씩 날리고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돌아와서까지 불량배들에게 시달리고 있다고 하니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들의 패가망신이야 자신들이 저지른 결과이므로 당연하지만 나라 꼴은 어찌 되겠는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통상이라는 핑계로 수입된 수천만 원을 웃도는 모피 코트는 어떤 여성을 위한 것이며 그 값을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사치성 초호화 가구의 수입은 어느 귀족(?)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외국산 담배의 소비량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찌 됐든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국론이 분열되고 있음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무역수지 둔화로 계속 늘어가고 있는 오늘의 경제위기, 아시아 거의 모든 나라에 흑자를 남겨주고 있는 미국에조차 3대 흑자 대상국이 되어버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따지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아내고 그 해결책을 위해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 난국을 뚫고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어제의 처지를 잊은 채 분수를 모르는 이기주의와 허영은 자신은 물론 나라 살림 전체를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두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한다. 문득 자족 자부(知足者富)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이는 민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풍요롭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분수를 모르고 망상에 붙잡힌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지배하고 있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모두 1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런 적은 돈이라도 끊임없이 저축합시다. 그 돈이 경제를 살리는 우리 동력이 될 것은 물론이지만 그보다도 국민의 사고 속에 아끼고 절약하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습관이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 길만이 1천 8백조 원의 가계부채 등 위기에 처한 국가 경제를 살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21세기 통일 한국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필자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