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나 한국영화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얼마 전 ‘우려가 현실이 된 한국형 우주영화’라든가 ‘밀수’·‘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다룬 글에서 극장가 최대 성수기라 할 여름 대목 시장 상황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세계일보(2023.9.2.)에 따르면 지난 여름 한국영화 ‘빅4’로 기대를 모았던 ‘밀수’·‘더 문’·‘비공식작전’·‘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누적 관객은 8월 말까지 4개 영화를 모두 합쳐 1,004만 명으로 나타났다.
더 이상 여름 대목이라 말하는 게 틀렸을 정도로 처참한 관객 수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대목인 추석 극장가에서도 한국영화 참패가 이어졌다. 지난해 ‘공조2: 인터내셔날’ 1편만 개봉했던 반면 이번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1947 보스톤’·‘거미집’ 3편이 경쟁을 벌였다. 아무리 그랬어도 ‘이런 추석 대목은 없었어’ 할 만큼 충격적인 관객 수다.
스포츠서울(2023.10.11.)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기간에 약 460만 명을 동원한 것에 비해 올해는 330만 명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임시 공휴일까지 지정돼 무려 6일간의 연휴였는데도 지난해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은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계속 1위를 달린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마저 손익분기점 달성이 물 건너간 상태다.
세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각각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240만 명, ‘1947 보스톤’ 450만 명, ‘거미집’은 200만 명쯤이다. 그런데도 이들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한글날 연휴와 두 번의 주말까지 다 지난 10월 23일 기준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190만, ‘1947 보스톤’ 96만, ‘거미집’ 31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CJ ENM 관계자는 “해외여행을 많이 가 공백이 있을 건 예상했지만, 극장 사이즈가 이렇게 줄어들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 영화관 관계자는 “이번 추석 스코어는 정말 충격이 큽니다. 내부적으로 정말 다 놀랐어요. 호재도 많았고, 구색도 좋았는데 이렇게까지 안 될 일인가 싶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배급사들은 황금연휴가 오히려 독이 됐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너무 긴 연휴라 선택지가 많아 영화 관람이 뒤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실제로 올해 추석 연휴기간(9.27~10.3) 국제선 여객 수는 약 73만 명으로 집계됐단다. 이는 2019년 추석 연휴기간의 수치(71만)를 넘어선 기록(앞의 스포츠서울)이다. 한 마디로 대중일반의 영화보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도 훨씬 까다로워졌다. 한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대체로 유튜브 요약본을 보고 해당 작품의 정보만 습득하고 학습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느낌이다”며 “이슈가 된 콘텐츠만 관심을 갖고, 대화 소재가 되지 못한 영화는 굳이 보지 않는 경향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화의 저조한 성적에 대해 비싼 관람료도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영화 관람료는 일반상영관 기준 1인당 평균 1만 4천 원이다. 지난해보다 7.4% 올라 역대 최고 기록이다. 앞의 세계일보에서 직장인 김홍구씨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극장 가본 지 오래됐다. … 요즘은 가족과 영화를 보러 가면 비용 부담도 되고, 보고 싶은 영화도 딱히 없다”고 털어놨다.
천만영화가 5편이나 나온 2019년은 우리나라 극장 영화의 최전성기였다. 앞의 세계일보에 따르면 당시 영화관 연간 누적 관객 수는 2억 2,667만여 명, 누적 매출액은 1조 9,139억 원으로 각각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영화도 매출액 기준으로 사상 최고인 9,707억 원, 관객 수는 2013년과 2015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억 1,562만 명을 기록했다.
그해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51%, 외국영화는 49%다. 갑자기 등장한 코로나19가 한국영화의 숨통을 조이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는 2012년 이후 매해 누적 관객 1억 명을 넘기며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19가 덮치자 시민들의 불안감과 함께 정부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실시됐다. 그 결과2020년 영화관 관객 수는 5,952만 명으로 전년 대비 4분의 1 토막이 났다.
2021년 극장 관객 수는 6,053만 명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영화 관객은 전년 4,000만 명에서 1,800만 명까지 뚝 떨어졌다. 그렇게 2021년 최악의 해를 보내고 2022년 전체 관객은 1억 1,602만 명으로 코로나 발생 전 대비 52%까지 회복했다. 한국영화 관객도 6,279만 명으로 회복세를 탔지만, ‘반짝 반등’이었다.
“이미 올해 3분기도 한 달여만을 남긴 지금, 극장 전체 관객 수는 8,663만 명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연간 관객 수는 약 1억 3,000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조금 나아지고, 코로나 발생 전 57% 수준까지 상승할 전망이”(앞의 세계일보) 나왔는데, 한국영화는 여름 추석 대목 빅7중 ‘밀수’·‘콘크리트 유토피아’ 단 두 편만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뿐이다.
중소형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9월 6일 개봉한 ‘잠’이 147만 명 넘는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약 100만)을 훌쩍 넘겼지만, ‘달짝지근해 :7510’은 아니다. 8월 15일 개봉한 ‘달짝지근해: 7510’은 손익분기점(약 165만)을 넘지 못한 138만 명에 그쳤다. 10월 3일 개봉한 ‘30일’이 3주 만에 162만 명을 동원해 손익분기점 160만 명을 겨우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나 한국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