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클래스 손흥민51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토트넘 트위터가 2월 20일(한국시간, 이하 같음.) “경기 도중 온라인에서 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별 욕설이 있었다. 우리는 손흥민 편에 서서 SNS 회사와 당국에 조치를 취해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토트넘 구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욕설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손흥민에게 골을 먹자 웨스트햄 팬들로 추정되는 일부가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섞어가며 “개고기나 먹어라”, “개고기를 먹어 골을 넣은 것”이라는 황당한 트윗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손흥민 인종차별에 대한 비난은 비단 소속팀인 토트넘만 들고 일어난 게 아니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잉글랜드축구협회(FA) 트위터도 “우리는 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별을 강력히 규탄한다. 당국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회사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뿐이 아니다.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영국 인권단체인 ‘킥 잇 아웃’ 역시 “손흥민을 향한 역겨운 인종차별이 있었다. 일주일 전에 브렌트포드 공격수 이반 토니가 SNS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는데 이번엔 손흥민”이라면서 SNS 회사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정부가 온라인 안전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킥 잇 아웃’은 공식 성명으로 “이반 토니와 손흥민은 과거에도 표적이었다. 정부와 소셜미디어 측이 온라인 안전 법안을 통과하는 동안 더 많은 선수들이 피해를 받을 것이다. 우리가 개혁을 기다리는 동안 선수들이 인종차별 학대를 감수해야 한다. 선수들은 절대 피해자가 돼선 안 된다.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킥 잇 아웃’은 관련 법안과 조치가 취해지는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킥 잇 아웃’은 “인종차별 학대를 저지른 사람들은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는 파트너들과 끊임없이 협력할 것”이라고 알렸다.
또한 영국에서의 일만도 아니다. 가령 이탈리아의 AC밀란 소셜미디어(SNS) 공식 트위터는 “인종차별에 레드카드를 꺼내야 한다. 우리는 손흥민과 함께 한다”는 댓글을 달며 토트넘의 ‘조치 촉구’에 공감의 뜻을 전했다. 토트넘의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상대팀인 AC밀란도 경기 승패와 상관없이 인종차별 규탄에 동참한 것이다.
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잠시 ‘월드 클래스 손흥민9’(장세진 수필집 ‘월드 클래스 손흥민’ 수록)을 들춰보자. 손흥민은 2021년 4월 1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의 경기에서 상대 골망을 갈랐다. 팀이 1대 3으로 졌는데도 경기 후 맨유 현지 팬들은 손흥민을 향해 인종 차별적 댓글을 퍼부어댔다.
이날 경기에서 손흥민은 전반 33분경 맥토미니의 손에 얼굴을 맞고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주심은 VAR 판독 끝에 맥토미니가 오른손으로 손흥민의 얼굴을 때렸다며 파울을 선언했다. 따라서 맥토미니가 손흥민과 공을 다투다 폴 포그바에게 패스했고, 다시 에딘손 카바니에게 연결돼 득점으로 이어진 골도 취소됐다.
맨유 팬들은 반칙이 아니며 손흥민의 할리우드 액션(반칙을 유도하기 위한 과장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맨유 팬들은 손흥민의 인스타그램 게시물들에 “DVD나 팔아라”, “손흥민은 한국 드라마 배우”, “돌아가서 개나 먹어라”, “팀에서 가장 눈이 작은 선수”, “쌀 먹는 사기꾼” 따위의 경기 내용과 상관없는 욕설과 인종차별적 댓글을 달았다.
‘DVD’는 아시아인이 노상에서 불법복제 DVD를 판다는 의미이며, 개고기 역시 인종차별 발언이다. 과연 승리한 팀의 팬들인지 의아스러움을 넘어 맨유와의 경기에서 매번 골을 넣는 손흥민에 대한 묻지마식 댓글 테러가 아닌가 싶은 작태다. 영국 경찰 조사 끝에 인종차별 글을 쓴 맨유 팬 12명은 손흥민에게 사과 편지를 써야 했다. 물론 이후 전해진 소식이다.
감독까지 한 술 더 뜬다. 솔셰르 맨유 감독은 “내 아들(SON)이 상대에게 얼굴 한 대를 맞고 3분을 누워 있다 다른 10명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다면, 나는 그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설사 그로 인해 패했더라도 그래선 안될 손흥민 폄하다. 도무지 승자답지 않은, 방구 뀐 놈이 성내는 후안무치한 태도라 아니 할 수 없다.
또 있다. 2018년 10월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던 웨스트햄 팬은 184파운드(29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2022년 8월 첼시 팬은 코너킥을 차러 가는 손흥민을 향해 눈을 양 옆으로 찢는 제스처를 취했다. 상대적으로 눈이 작은 동양인을 비하할 때 쓰는 행동이다. 첼시 구단은 조사 끝에 시즌 티켓 소지자인 이 팬을 찾아내 무기한 경기장 출입금지 철퇴를 내렸다.
손흥민뿐만 아니라 자메이카·터키·세네갈 출신 등 다른 EPL 선수들도 인종차별적인 공격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도 과거 침략을 일삼던 대영제국 후예들에게 아직도 그 근성을 버리지 못했냐 등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도대체 누가 누굴 무슨 권리로 인종차별하는 것인지 가소롭기 그지 없는 일이다. 월드 클래스 손흥민,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