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 저효율의 노사문화
허성배 주필
우리사회는 고비용 저효율의 노사문화에 시달린 지 오래다.
다수 사회 구성원이 값비싼 분규 행태와 부작용을 묵묵히 감당해왔다. 그런 현상은 지역이나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노사관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경제적으로 잘나가는 국가일수록 노동현장이 안정적이라는 얘기가 들려도 도무지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 분야의 노사는 거의 해마다 유사한 분규와 협상 과정을 반복한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관행적인 합의 방식과 중앙 집중적인 행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제껏 우리사회의 노사관계가 악화일로였던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대립과 투쟁 일변도이던 것이 협력을 통한 산업평화 정착에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상호 인식의 폭이 조금씩 넓어졌다.
지역에서도 건전하고 새로운 노사문화 형성과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위한 노사정 차원의 노력이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나 공기업,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지역 고유의 협력모델 창출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려는 적극적 접근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일반적인 우리 노사문화는 여전히 관행과 중앙 의존을 벗어나지 못했다. 글로벌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여러 해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지역에 진출한 외국인투자기업에서 노동자들이 장기파업을 벌였다. 격렬한 임금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수개월을 끌던 그 분규가 끝난 후 회사 대표를 만나 얘기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외국인 대표는 한국형 분규 타결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고 했다. 장기파업 사태는 작업 현장에서 벌어졌는데, 어리둥절하게도 막상 최종 협상 당사자로 타결과정에 참여해서 도장 찍겠다고 나선 쪽은 서울의 상급노조 사람들이었다.
여기에다 더 황당한 건 노조가 공식적인 파업 종식 문서를 작성한 후에도 또 다른 요구사항을 담은 이면합의서를 쓰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 이중합의가 필요한지를 물었더니 늘 해오던 관행이라는 답을 들었다면서, 본인의 경험으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폐습이라고 했다. 아무리 문화와 제도 차이 때문에 생긴 오해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노사영역은 해외 기업인들로부터 낡고 뒤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노사행정도 마찬가지다. 요즘 우리사회에서는 지방분권이 일종의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노사문제를 다루는 권한까지 지방으로 이양된 것은 아니다. 탈집중화와 중앙권력의 지방화가 광범위하게 진행 중인데 노사정책 결정구조는 아직까지 거의 그대로다. 노사분야만큼은 지역의 행정 자율성과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고, 노동조합마저 상급 의존성이 대단히 높다 보니 정책 혼선과 갈등 해결 과정의 복잡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낭비가 엄청나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으면서 효과적인 방향으로 상황을 개선하자면 중앙 시각의 일률적 적용보다 노사갈등이 일어나는 현장의 역할 확대가 바람직하다. 지역 특수성과 독자성을 살리는 분권적 형태로 재조정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중앙정부와 상급 노동조직이 절대 우위의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노사문화의 대전환이 힘들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에 상당한 수준의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 심지어는 노사분규의 불법성 기준이 지역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해진다. 지역 차원에서 노동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노사 안정성을 보장하여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경우도 노동현장에 뿌리박힌 후진적인 관행을 벗어던지면서 지역이 넉넉히 자기 결정권을 가져야 저비용 고효율의 노사문화를 재정립하고 당면한 복합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