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인재의 부족과 고등교육의 위기
허성배 주필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산업계의 인력수요와 대학의 공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4년제 일반대학 졸업생 중 인문계는 43.5%인 반면 이공계는 37.7%로 나타나 인문계 졸업자가 5.8% 더 높았다.
반면 국내 500대 기업들의 신규채용 계획을 보면 신규채용의 약 60%를 이공계 졸업자로 원하고 있었다. 공급은 한정적인데 일자리 수요는 높은 이공계는 갈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대학의 인재양성은 충분치 못하는 상황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대학은 아직도 녹슨 울타리 안에서 폼만 잡는 형국이라 고등교육의 혁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의 대학이 시대의 흐름을 적시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공계에 대한 투자의 빈곤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공계에 대한 대학의 투자는 소위 재정여건이 어렵다는 이유로 시대적 흐름에 지체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도체 인력수요는 연 1만 명인데 반해 대졸 전공자는 20%도 안 된다는 보도가 있다. 2차 전지와 로봇분야도 인재 가뭄이 극심한 상황이다. 미국의 대학은 시대조류를 이끌어 가고 있으나 한국의 대학은 뒤따라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례로 스텐포드대학은 컴퓨터공학과의 정원을 2008년도 141명에서 2022년도 745명으로 604명을 증원 시켰다. 반면 서울대학은 같은 기간에 55명에서 70명으로 15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국 대학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2021년 평가한 한국의 대학교육의 시장경쟁력 순위는 75개국 중 47위로 나타났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19년 한국의 고등교육 1인당 공교육비 투자는 1만1287달러로 OECD평균 1만7559달러의 64.3%에 그치고 있다. GDP대비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 비율도 0.6%로 OECD평균 0.9%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처럼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빈약한 투자는 대학으로 하여금 산업계의 수요를 제때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고 있으며 결국 시장과 대학이 일체화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혼란된 상황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
대학의 위기를 느낀 정부는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등 첨단학과의 정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올해 내에 대학 운영 규정을 완화 시킬 예정이다. 기초과학이나 이공계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연구 등을 강화하여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대학교육의 혁신을 이끌 계획이다. 지역별 특성에 따라 강소대학을 육성하여 지역혁신의 중심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특성과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진행되었던 평가방법도 개선하여 대학의 에너지 낭비를 줄이겠다고 한다. 상당 부분 대학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투자도 제도적으로 개선이 되었다.
대학에 대한 재정적 투자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이 지난해 말 통과되었다. 당장의 산적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해결의 기회를 잡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올해부터 한국의 고등교육은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 변화를 국가 경쟁력 상승의 바탕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이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 세계적 조류의 흐름에 편성하여 앞서갈 수 있는 한국의 대학이 되기 위한 답은 지속적인 투자와 혁신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실천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