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11일 내장산 조선왕조실록 보존 터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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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11일 내장산 조선왕조실록 보존 터 답사
  • 박호진 기자
  • 승인 2012.04.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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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생기시장·정읍시미래전략자문단 비롯 관계자 40여명


- 내장산 용굴암·은봉암·비래암 등 전문가 안내로 보존터 둘러봐


지난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 보존 터 복원 및 문화축전’ 개최를 추진해오고 있는 정읍시가 전문가들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보존 터를 답사해 관심을 모았다.

이날 답사에는 김생기시장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들과 전주지검 조종태 정읍지청장, 정읍시 미래전략자문단 신동화 지역자문위원장 등 위원들, 국립공원 내장산관리사무소 김종담 소장과 대한불교 조계종 내장사 주지 지선 스님 등 40여 명이 함께 했다.

참석자들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답사 안내를 맡은 전북대학교 사학과 하태규 교수의 안내로 임진왜란 당시 전주 경기전에서 옮겨온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했던 용굴암과 은봉암, 비래봉을 둘러보고 역사문화자원화를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하고 모색했다.

이날 하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실록과 어진을 지키기 위해서 전라감영의 관원과 정읍 태인의 유생 그리고 지역민이 하나가 되어 이처럼 험한 산골로 실록과 어진을 이안해 1년 1개월 여 동안 지켜냈으며, 이후 실록과 어진은 충남 아산과 해주, 그리고 경기도 강화도를 거쳐 평안도 묘향산까지 옮겨 임진왜란이 끝난 뒤 다섯 본을 만들어냄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조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선왕조실록은 용굴암을 거쳐 은적암과 비래암으로 옮겨졌고, 태조 어진은 용굴암을 거쳐 바로 비래암으로 이안된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시는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처럼 소실의 위험에 처했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목숨을 걸고 지켜낸 정읍인들의 역사지킴이 활동을 고증해 복원하고 재현행사를 통해 관광자원화한다는 방침으로 지난해 ‘조선왕조실록 보존터 지표·문헌조사’를 마쳤다.

지표조사에서는 용굴암·은적암·비래암 추정터를 조사했고 조사 지점 5곳에서 청해파문 (조선)ㆍ어골문 ㆍ집선문 (고려-조선)의 기와 문양과 조선 전기에 유행한 형태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대접류의 자기 등 출토 유물을 검토한 결과 『조선왕조실록』및 어진 보존 터일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판명됐다.

시는 올해 안에 있을 발굴조사를 통해 보존터를 확인하고, 차후 국가문화재 지정을 추진함과 동시에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정읍의 역사문화자원으로 지정하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는 한편 관련 사업을 세워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조선실록과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전기부터 서울의 춘추관, 충청도 충주사고, 경상도 성주사고, 전라도 전주사고 등 전국에 나누어 보관되던 것으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보관하던 실록만 남고 모두 멸실됐다.

유일본이 된 전주사고본 실록을 지키기 위해 정읍 선비 안의와 손홍록 그리고 내장사 주지 희묵대사 등이 주축이 되어 앞장섰다. 이들은 전주 경기전내에 있던 전주사고에서 내장산 용굴암ㆍ은적(봉)암ㆍ비래암 등지로 실록과 태조 어진을 이안시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걸고 지켜냈다.

정읍 내장산에서 멸실될 위기를 면하고 보존된 실록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돼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은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27책, 기타 산엽본 21책을 포함해서 총 2,077책이 일괄적으로 국보 제 151호로 지정돼 있으며,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내장산이 실록과 어진의 이안 장소로 선택된 것은 방벽하게 높이 솟아 기세가 매우 험하고 경계가 더욱 빽빽한데다 계곡이 험절하여 피난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때문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정읍=박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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