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시골이 고향인 나는 어렸을 때 어른들이 흔히 쓰는 말 중 ‘싸가지 없는 놈’이란 소리를 자주 들었다. 당시 어른들은 어린애들이 조금 못된 짓을 했을 때, 또는 어른끼리 싸울 때면 으레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 고향에서는 ‘싸가지 없다’를 다른 말로 ‘싹동머리 없는 놈’, 또는 ‘싹동배기 없는 놈’으로도 사용했다.
초등학교 4~5학년으로 기억한다. 어느 여름날 몇몇 친구들이 동네 형들을 따라 마을에서 약 1킬로 정도 떨어진 냇가로 고기를 잡으러 갔다. 냇가 둑을 따라 걷다 보니 주변에 마늘밭이 초록 물결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순간 우리는 집단으로 마늘밭에 들어가 마늘종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야이 싸가지 없는 놈들아”하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개구쟁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과거의 기억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다. 장차 거목이 될 나무는 씨앗 속에서 처음 싹터 나오는 잎부터 그 징조가 보인다. 이 속담에 쓰인 ‘떡잎’은 거목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징조다. 이것이 싸가지다. 싹수가 노랗다면 그 나무는 싸가지가 없는 것이다. 싸가지가 없으니 성장의 가망이 거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싸가지가 있는’ 일이 많아야 좋은데, 연일 ‘싸가지 없는’ 일도 생겨나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다면 모든 범죄자들은 싸가지가 없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범죄 행위 자체가 사회악이자 비윤리적이고 싸가지 없는 짓이다.
보이스피싱으로 금전적 피해를 입은 여대생이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는가 하면, 피땀 흘려 번 1억 원이 넘는 돈을 보이스피싱으로 빼앗긴 40대 남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도 있었다. 또한 자녀를 납치했다고 속여 수억 원을 가로챈 일도 있다. 범인들은 주로 검찰, 경찰, 국정원, 금융감독원을 사칭하며 피해자들을 속인다.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 생각은 안 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남을 속여 한탕을 노리는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천하 싸가지 없는 인간들이다.
최근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물을 만들게 하고 성관계까지 가진 고등학생 등 남성 25명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피해자 46명 중에는 12세 초등학생도 포함돼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현직 경찰관이 중학교 1학년 미성년자와 성관계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범행의 주요 통로는 소셜미디어다. 피의자들 또한 싸가지 없는 인간들이다.
먹거리로 장난치는 업소들도 많다. 일본산 수산물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둔갑시키거나 수입 고기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하기도 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로 만든 음식을 팔다가 적발된 업소도 있다. 이제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일은 만성이 되었다. 주방의 위생 청결 관리가 미흡한 업소도 있다. 사람이 먹는 음식물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죗값을 받아야 하며 이들 역시 싸가지가 없는 인간들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적나라하게 만나는 양심 불량 현장이 바로 쓰레기 불법 투기다. 도심은 물론이고 고속도로, 국도, 심지어 터널 안이나 한적한 시골길에도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있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근절되지 않는 고질병이다. 양심을 버리는 인간들이야말로 싸가지가 반푼어치도 없다.
세상은 싸가지 없는 인간과 싸가지 있는 인간이 공존하고 있다. 매일 싸가지 있는 좋은 일만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싸가지가 있는 인간들, 싸가지가 있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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