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녀린 소년의 소원~(연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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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녀린 소년의 소원~(연재6)
  • 투데이안
  • 승인 2009.08.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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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대회 중 오늘이 딱 중간되는 날이다. 이제는 사막 생활에 어느 정도 내성을 갖추고 적응이 끝났다고 볼 수 있는 시점이다.

그래서인지 오늘 새벽부터 발걸음이 빠르다. 새벽 별 보기 운동도 아닌데 달리다가 우연히 바라 본 새벽 하늘? 어린시절 시골하늘에서 보았던 초롱초롱한 별이 생각난다.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빛은 참가자들의 헤드랜턴 불빛과 조화를 이뤄 몽환적인 사하라의 아침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사이 브랜튼이 오 ‘제씨’하면서 말을 건다. 자기는 이번 사하라 완주하고 내년 1월 남극 대회에 도전을 해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내년 고비와 아타카마 사막 대회 완주하고 그 다음해에 남극을 가겠다고 하니 자기가 먼저 갔다 와서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며 웃는다. 그래 고맙다 친구야.

초반에는 조경일님과 함께 어울러 달렸다. 조경일님은 재일동포로 전형적인 착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유학한 덕분에 유창한 프랑스 말과 일본어, 영어, 어눌하지만 씩씩한 한국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엘리트로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누비고 다니는 비즈니스맨이다.

달리기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다 어느 날 갑자기 고비사막 대회를 참가하겠다며 1년을 준비한 엉뚱함이 있기에 나와는 코드가 잘 맞는 낭만파 아저씨다.


날이 밝으니 코스의 정체가 확실히 들어 난다. 이곳도 백 사막의 영향권인지 마치 오렌지색 모래 위에 흰색의 밀가루 가루와 밀가루 반죽 덩어리를 뿌려 놓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간의 모래지역만 빼고는 전반적으로 평탄한 코스를 냅다 달려 두 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니 여러 참가자들이 쉬고 있었다.

그 동안 주로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얼굴들이 었기에 서로 반갑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발이 아프다 보니 통증을 잊기 위해 달렸는데 덕분에 중간 그룹은 유지할 수 있었다.

물과 에너지를 보충하고 길을 나서는데 그 동안 잠잠하던 발가락 물집 통증이 되살아나며 가는 길을 물고 늘어졌다. 발이 아프니 속도가 안 나고 날씨는 더워지고 짜증이 나면서 미칠 것 같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기에 코스에서 약간 벗어나 앉아 신발을 벗었다.

도우미 김인백씨는 발바닥까지 물집이 생겼다. 절룩거리며 나를 안내하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 몇번이고 포기할려고 했지만 관장님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나 몰래 많이 울었단다. 나만 울보인줄 알았는데. 눈으로 모래가 들어가지 말라고 만든 고글이 나를 실컷 울게한 것이다. 펑펑 쏟아지는 눈물이 고글에 가득고여있고, 가끔 살짝 들면 눈물덩어리가 툭하고 떨어진다.

눈물은 시원한 물을 마신것 같은 청량제 역할을 해준다.

발이 붓고 발가락이 아프다 보니 신발을 신을 때 약간 틀어서 발을 집어 넣고 안에서 다시 틀어 신어야지 발이 들어갔다.

사막에서는 신발이 제일 중요하다. 신발 회사들이여 한번 더 강조하는데, 이 가녀린 소년의 소원 좀 들어주시오. 제발 발 볼 넓은 신발도 만들어 주세요.

신발 때문에 씨름하는 사이 많은 주자들이 지나가다가 괜찮으냐며 걱정을 해주었다. 어찌 보면 다 들 똑 같은 상황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았을 것 같았을 것이다.

어렵사리 모래지역과 폭염을 뚫고 세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하니 만사가 귀찮아 진다. 한숨 자고 갈까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거리 한번에 가기로 했다. 도우미도 지쳤는지 자주 비틀거린다. 나는 젖먹은 힘을 다해 노래를 불러준다. 파트너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정혜경님이 우리를 추월했다. 이 언니 정말 생생하다. 도대체 뭘 먹고 자랐기에 사하라에서 펄펄 날아다닐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혹시 그 몸에 좋다는 사하라 전갈을 혼자서 다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여튼 ‘사막의 딸’로 불릴 정도로 한국팀 중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이제부터 지형이 바뀌어 말똥 같이 검은 돌맹이 들과 작은 검정의 자갈들이 뿌려져 있는 흑 사막 지대를 관통하는 코스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황막한 검정색 언덕으로 이루어진 코스를 만화 주인공 스머프가 뛰어가듯 룰루랄라 하며 가는데 앞쪽에서 누군가 비상 신호를 보낸다.

그곳에는 호주 선수가 더위를 먹고 쓰러져서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재빨리 응급처치를 하고 호각을 불어 운영진 차량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거짓말 같이 저 쪽 언덕 너머에서 운영진 차량이 나타났다.

예전 ‘짱가’라는 만화 주제가가 떠올랐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짱~가’. 그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호각을 불면 된다.


마지막 언덕에서 급피치를 올렸다. 오랜만에 일찍 골인했다. 송민이는 이탈리아 자원봉사자 닥터에게 아빠의 몸상태를 점검해달라고 부탁했다. 말썽부린 왼쪽 발톱을 뽑았다. 송민이와 닥터는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큰 아들 덕좀 본것이다.

텐트 분위기가 삭막하여 한국팀 선수와 KBS 관계자와 함께 모여 회의를 했다. 그동안 김인백씨 혼자 나의 도우미 역할을 했는데 팀 분위기도 쇄신할겸 내일 치뤄질 롱데이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주도우미를 미스타 코리아 출신인 창용찬씨를 그리고 팀메이트로 김성관씨와 정혜경씨로 구성했다.

이어 생일을 맞이한 참가자들의 합동 생일 파티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경선이가 생일이기에 또 다시 우리들만의 자그마한 파티도 벌였다.

사하라의 별 빛 아래 케익을 나눠 먹으며 오손도손 함께 즐기는 사하라의 낭만과 여유. 새벽부터 정말로 마지막 관문인 롱데이의 시작이지만 모두가 축제 분위기 속에 자유를 만끽 할 수 있는 이곳의 여유가 마냥 좋다.
오늘 기록은 11시간 17분 1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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